겸허해지는 순간

오월햇살


네 엄마를 분만실로 들여보내고
문밖에서
겁 많은 네 엄마의 불안을 주워 담으며
아직 태어나지 않은 네가
노래 못 부르는 것은 나를 닮지 말고
뽀얀 속살은 네 엄마를 닮았으면 하다가도
저어기
네 엄마의 신음소리가 들릴때면
여자이기보다는 남자이기보다는
예쁘다기보다는 선하다기보다는
그저 너와 네 엄마가 건강하기를
햇살처럼
들풀처럼 건강하기를
병원 복도를 동동거리는 동안
창 밖엔
오월 햇살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한주 / 너희들 키만큼 내 마음도 자랐을까 / 삶이 보이는 창 


시의 제목이 '오월 햇살'이다. 우리 둘째도 햇살이 따뜻한 오월에 태어났다. 첫째때 충분히 기다렸다가 병원에 갔다고 생각했는데도, 병원에서 진통을 열시간이나 했던 기억때문에, 이번에는 좀 더 기다렸다가 출발했다. 준비물을 챙기고, 큰 아이의 손을 붙잡고 함께 집을 나섰다. 첫째도 같은 병원에서 낳았는데, 지금 집에서는 차로 이십여분 걸리는 거리다.(첫째때는 걸어서 이십여분 걸리는 곳에 살았다.) 택시를 잡아 타고 병원을 향했다. 아내는 첫째때 아무 준비없이 산통을 겪으며, 무척 힘들어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탁틴맘'이란 곳에서 임산부 요가도 하고, 호흡법을 비롯한 여러가지를 미리 배워놓고, 준비를 착실하게 했다. 5년전에 비하면 제법 느긋한 마음으로 병원에 들어섰다. 나는 주로 애를 챙겼다. 큰 애는 동생이 태어난다는 아주 중대한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좁은 개인별 대기실에 짐을 풀고, 큰 애에게 동생이 나올 일에 대해 여러가지 설명을 하고 있었는데, 겉싸개가 준비되지 않았다고, 간호사가 집에서 갖고 오라고 했다. 5년 전에는 그 병원에서 겉싸개를 준비해줬다. 그래서 우리는 일부러 챙겨오지 않았는데, 그새 방침이 바뀌어서 이제는 병원에서 제공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내는 얼른 집에 다녀와달라고 했다. 큰 애를 그냥 둘 수 없어서 함께 데려갔다. 택시를 잡아타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차가 조금 막혔다. 서두른다고 애를 썼는데도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었다. 겉싸개와 한두가지 물품들을 찾아들고 집을 나서서, 택시를 잡으러 큰 길로 향하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나를 집으로 보낸 그 간호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어디쯤 오고 계신가 물었다. 나는 아직 시간이 좀 걸린다고 했다. 병원에 도착한지 이제 겨우 한시간쯤 지난 것 같은데 벌써 분만이 시작되려 한다고, 서둘러 오라고 한다. 전화를 끊자마자 큰 애를 어깨에 들쳐메고 뛰었다. 꼭 급할 때는 택시가 잘 안잡힌다. 서둘러야 아기가 태어나는 모습을 볼텐데, 아빠가 도착해야 탯줄을 자를텐데, 아내가 힘들때 내가 손을 잡아줘야하는데, 빨리가야 할텐데. 자꾸만 속이 탔다. 겨우 택시를 잡았다. 기사님께 짧게 설명을 드리고, 최대한 서둘러 주십사 부탁을 했다. 기사님은 택시만이 가능한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달리셨다. 덕분에 약간 차가 밀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빨리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시 큰 애를 들쳐메고 뛰었다. 분만실로 달려가니 나에게 전화를 했던 간호사가 안절부절못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곧 나올것 같다고 서둘러 수술가운 같은 옷을 입혀주었다. 큰 애 손을 잡고 들어가니, 이미 아기 머리가 반쯤 나온 것 같았다. 다 되었다고 원장선생님께서 아내를 다독이고 있었다. 재빨리 아내에게 다가가서 손을 잡아주었다. 곧 아기가 태어났다. 간호사가 아기를 아내의 가슴에 안겨주었다. 곧이어 나는 탯줄을 잘랐다. 큰 애는 분만실 입구쪽에 정신없이 멍하게 서있었다. 아차! 급하게 서두르다보니, 큰 애에게 신경을 못썼다. 큰 애를 안아주고 동생이 태어난 일에 대해서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 두번째는 좀 잘할수도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치도 못한 일로 이번에도 정신이 없었다. 다행히 진통을 오래겪지 않았고, 아내도 아기도 모두 건강했다. 하마터면 아기가 태어나는 모습을 못볼뻔했지만(그래서 그 간호사는 자기 책임이라 생각하고 엄청 마음을 졸였다고 했다.), 그것도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 그리고 아래는 첫째가 태어나던 순간에 대해 기록해놓은 글이다. 예전 블로그에서 옮겨왔다. 

오늘은 아내가 열시간이 넘는 진통 후에 아이를 낳은 날이다. 즉 우리 아이의 생일이다! 아마도 예정일이 지났던 것 같다. 아내는 거짓말처럼 예정일에 진통을 느낀다고 했는데, 알고보니 그건 '가진통'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진통이 오기 전 단계였다. 가진통으로부터 대략 이틀(아마도 워낙 정신이 없을때였기에 그런지 정확한 시간이 기억이 안난다!)쯤 지나서 진짜 진통이 왔다. 아내와 나는 여러차례 병원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다가, 아내가 이젠 가야한다고 확신하자 대충 짐을 싸들고 병원을 향했다.

마침 당시 우리 동네에 아기와 산모를 위해 작은부분까지도 신경을 많이 써주기로 유명한 병원이 있었다. 나야 그런 것 하나도 모르지만, 아내는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그 병원이 곧 태어날 우리 아이를 위해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병원까지 보통 사람 걸음으로 걸어서 대략 20분쯤 걸리는 거리였다. 택시를 탈까 고민하다가 그냥 천천히 걸어서 갔다. 아내는 걷는 게 자연분만에 도움이 될 거라고 말했다. 걸어가면서 우리는 유명한 노래 가사를 떠올리며 '10월의 마지막 날'에 아이가 태어나게 되었다고 얘기하며 웃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아내가 이런 저런 준비를 하는 동안 장모님과 아내의 가장 친한 친구가 달려왔다. 진통이 심해지자 아내는 소리를 질러대며 내 손을, 팔을 그리고 내 머리칼(딱 한번)을 쥐어뜯었다. 다른 사람들은 임신하면 미리 무슨무슨 호흡법 등등을 배운다고 하던데, 아내는 그런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진통이 오면 그냥 소리를 질러대고 이를 앙다물고 그 고통에 맞섰다. 얼마나 소리를 질렀던지 병원이 떠나갈 지경이었다. 나와 아내의 친구는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고 애썼지만 아내는 홀로 죽을만큼 아프다는 고통을 이겨나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아내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가지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아, 그 기분을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으랴!

집에서 처음 진통을 느낀 지 열시간이 넘어섰다. 아내는 점점 더 빨라지는 진통에 죽을 듯이 괴로워했다. 여전히 소리를 질러대는데, 그제서야 간호원 한 명이 들어오더니, 소리를 지르면 안된다고 말하면서 호흡법을 알려주고, 어디에 어떤 느낌으로 힘을 줘야 하는지도 알려줬다. 진통은 오래했지만 요령이 없어서 아직 자궁이 하나도 안열렸다고 했다. 간호원은 언젠가 영화에서 본 듯한 호흡법을 알려주며 '아빠'가 함께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점점 더 진통은 빨라졌고, 아내와 나와 아내의 친구는 아주 열심히 간호원이 알려준 호흡법을 따라했다. 아내는 여전히 아프긴하지만 아까보다는 한결 나아진 모습으로 호흡법에 집중했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서 다시 간호원이 오더니 곧 분만이 시작될 것 같다고 분만실로 옮겼다. TV나 책에서 보면 분만할 때 남자는 밖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초조해하면서 기다리던데, 나는 분만실에 함께 들어갔다. 이 병원은 남편이 곁에 있도록 하는 방침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의사 선생님은 아내를 격려하기도 하고, 요령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정신없는 내게 무언가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아내의 손을 꼭 잡은 채 나는 아내와 아이가 별 탈이 없기만을 바라고 또 바랬다. 거의 다 되었다고 조금만 더 힘을 주라고 의사 선생님이 재촉하고 격려하기를 여러차례. 마침내 아이가 이 세상으로 나왔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원은 아이가 나오자 아빠가 탯줄을 자르라고 했다. 워낙 긴장하고 있던 터라 뭘 어찌해야할지 몰라서 허둥대는데, 간호원이 시키는대로 움직여서 간신히 탯줄을 잘랐다. 간호원은 아이를 깨끗한 천으로 감싸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아이는 쭈글쭈글한 모습으로 맹렬하게 울고 있었다. 잠시 아이를 간단히 씻겨서 깨끗한 배냇저고리에 감싸서 엄마에게 안겨줬다. 아내는 아이를 안고서 눈물을 흘렸다. 나 역시 흘러나오려는 눈물을 간신히 참아냈다.

삼일 동안 아내와 나와 아이는 병실에 있었다. 다른 아빠들은 아이가 태어난 날과 다음날 정도만 쉴 수 있었다는 말을 종종 들었는데, 나는 한 달동안 육아 휴가를 받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아이는 잠을 자거나 젖을 빨거나 울거나 했다. 한 밤중에 깨서 울면 아내는 젖을 물렸고, 젖을 다 먹은 아이를 잠시 바람을 쐬주기 위해 내가 안고 나와서 병원 복도를 거닐었다.

작고 여린 생명을 안고서 나는 어쩜 이리도 작을까 신기해하고 또 신기해했다. 아이에게 뱃속에서 목소리로만 들었던 아빠를 실제로 만난 소감을 물어보기도 하고, 어서 무럭무럭 자라서 아빠랑 함께 등산도 가고, 축구도 하고, 여행도 가자고 약속하기도 했다. 그리고 좀 더 좋은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말도 안되는 곳에 태어나게해서 미안하다고, 네가 크면 아빠와 함께 좋은 세상 만드는 일을 함께 하자고 얘기해주기도 했다.

지금도 팔에 그리고 가슴에 그 조그만 아이를 안았던 감촉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다!

오늘은 10월의 마지막 날이자, 아이의 생일이다. 아이를 위해서도 축하해야 할 날이지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이겨낸 아내를 위해 꼭 기념해야 할 날이다! 마침 금요일이다! 일중독에서 하루쯤은 벗어나서 뭔가를 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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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3-24 0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아이 모두 탯줄을 직접 자르셨군요. 겁나서 못하겠다고 하는 아빠들도 많다던데.
아이가 태어나던 날은 그 아이 본인만 기억못할뿐, 아이 엄마에게도 그리고 아빠에게도 잊을 수 없는 날이지요.
그 고통을 견디며 낳은 아이들이 벌써 자라 소리 지르며 뛰어 노는 모습을 보면 문득 뭉클해질 때가 있어요.

감은빛 2011-03-28 13:04   좋아요 0 | URL
잊을 수 없는 날이지만, 해가 갈수록 사소한 일들은 자꾸 잊게되더라구요.
저는 애들이 태어난 당일 일은 또렷이 기억하지만,
그 이후 며칠은 너무 정신이 없어서 잘 기억이 안나요.

커가는 아이들보면 문득 뭉클해질 때가 있죠! 공감합니다!

첫눈 2011-03-24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태어나던 순간을 지금도 잊지않고 실감나게 기록을 하시다니..
부인되시는 분께서 이 글을 보신다면 눈물을 흘리실것 같네요.
보는 저도 마음이 뭉클할 정도에요.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글에 가득 담겨있네요.
모두 행복하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감은빛 2011-03-28 13:05   좋아요 0 | URL
이렇게라도 써두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릴 것 같아서요.
고맙습니다!

스트레인지러브 2011-03-24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무엇보다 아이의 출생순간을 기록하신 건 대단한데요.

그 아이에게 물려줘도 충분히 자랑스러울 그런 기록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이 흐를수록 더없이 소중해지는 그런 글 같네요.

감은빛 2011-03-28 13:06   좋아요 0 | URL
이렇게 적어두면, 나중에 들려줄 때 참고가 될 것 같네요.
고맙습니다!

루쉰P 2011-03-24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결혼을 하지 못해 그 마음을 충분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뭔가 따뜻하고 가슴이 벅차다는 것은 느낄 수가 있네요.^^ 저도 제 아이가 태어난다면 어떤 기분일지 참으로 기대가 만땅이에요. 그래도 다짐하는 건 아이들에게는 좀 인간다운 사람으로 저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많아요. 아! 정말 좋으시겠어요.^^

감은빛 2011-03-28 13:07   좋아요 0 | URL
아이에게 자신을 보여준다기 보다는,
그냥 아이가 있는그대로의 아빠를 받아들일거예요.
고맙습니다!

양철나무꾼 2011-03-24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제가 둘째를 아직 낳지 못해서 이런 멋진 글을 남편에게 선물 받지 못했을까요?
아님, 울 아들은 꽃 피는 5월이 아닌 쓸쓸한 10월생이어서 그럴까요?
곡우님도 그렇고, 님도 그렇고...아내와 아이를 무한감동시키시는 분들인 듯~^^

감은빛 2011-03-28 13:10   좋아요 0 | URL
저희 첫째가 10월의 마지막 날 태어났어요.
절대 잊어버리지못할 생일이 되었죠.(이용의 노래와 함께~ ^^)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 2011-03-28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는 진통하면서 승질나서 신랑을 병실에서 쫒아냈던 기억이 있어요.

그나저나, 첫째 아이가 동생의 분만을 보고 좀 놀랐겠는데요.
탯줄을 자르셨다니 멋지십니다. ^^ 어쩐지 마음이 따스해지는 글입니다.

감은빛님 페이퍼로 예전 그 순간을 되새겨보는데, 무서워서 두째는 꿈도 못 꾸겠어요. ㅋ
하두 고생하면서 낳아서 말이죠~

감은빛 2011-03-28 13:15   좋아요 0 | URL
병실에서 쫓겨난 아빠 이야기 굉장히 재밌을 것 같은데요. ^^
네, 첫째가 동생 태어나는 장면을 보고 많이 놀랐던 것 같아요.
미리 얘기도 많이 들려주고, 그림책도 보여주고 했는데,
역시 간접경험과 직접경험은 비교할 수가 없는 듯!

아내도 너무 힘들었다고, 절대 둘째는 안 낳을거라고 했어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첫째가 많이 자라버리니까,
다시 조그만 아기가 그리웠는지, 둘째를 갖기로 했죠. ^^